생명서판의 여섯 골짜기, 김종길2023

생명서판의 여섯 골짜기

– 서인혜가 이룬 ‘골검(谷神)’의 시김새 미학

김종길 미술평론가

그는 상징의 그물을 짠다. 상징은 작품의 기표(記表)만으로 짜지 않았다. 그가 이룬 상징은 하나하나가 다 웅숭깊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오래된 삶이 이룬 ‘말’의 신화들이다. 신화가 흐르는 실개천이다. 그 이야기들의 ‘긔림(image)’이 기의(記意)를 이루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온통은 아니다. 서인혜는 흰 ‘꿍꿍(想像)’을 피어 올렸다. 기표와 기의가 소용돌이로 솟구치는 흰 사슴뿔을! 그저 상징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그의 마음 안팎을(혹은 우리 모두의 마음 안팎을) 흐르고 흘러 골짜기로 파고들기 바랐다. 파고든 골짜기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거룩한 ‘골검(谷神)’이었다. 노자 ‘늙은이(老子)’는 “골검은 죽지 않ᄋᆞ. 이 일러 감ᄒᆞᆫ ./ 감ᄒᆞᆫ 의 입. 이 일러 하늘 땅 뿌리.// 소믈소믈 그럴듯 있ᄋᆞ, 쓰는데 힘들지 않음.”이라 했다. 이때 ‘골검’은 신성한 우주할미, 곧 마고할미다. 그는 ‘여와(女媧)’를 꺼냈을 뿐 ‘마고(麻姑)’를 눈앞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를 이루는 바탕에는 모든 할미들의 어머니인 마고할미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제5장 《긴힛ᄃᆞᆫ 그츠리잇가》에 놓인 바위들에서 그 느낌은 선연했다. 그 생명서판의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시김새’는 마치 ‘소믈소믈 그럴 듯 있어(綿綿若存)’ 온 잇고 이음의 ‘이음길’이었다. 나는 여섯 장면들로 구성된 이 전시를 여섯 개의 열쇳말로 풀어보았다.

#1. 첫 비롯의 때(太始)

수림미술상 수상작가전으로 수림큐브에서 열린 서인혜의 《공무도하(公無渡河)》는 여러 물줄기를 타고 가는 긔림으로 얽어 맨 그물코였다. 그리워 그리는 긔림은 ‘그이가 줄곧 임’하지 않으면 아니 옳 나위다(不可能). 그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벼릿줄로 길게 이어진 날줄의 ‘첫 비롯(太始)’은 어디였을까? 그가 먼 어제로 넘어가 닿은 곳은 말머리로 내세운 《공무도하》에서 볼 수 있듯이 옛조선(古朝鮮)인 듯하나, 사실 그곳은 우리가 어림잡기 힘든 곳이다. 그런데 그는 그 어림잡을 수 없는 곳을 넘어서 복희․여와에 가닿고 심지어는 마고성(麻姑城)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이곳의 ‘할머니(할미)’를 올레길 삼아 까마득하게 이어진 우주 끄트머리 ‘가막골(神話地)’로 들어가 서천꽃밭에 다다른 것이다. 처음은 〈버무려진 이야기〉(2017)에서 비롯되었다. 외할머니가 남긴 유품 『여자의 일생』에 색을 칠하고 덧입히고, 무늬를 넣고, 그림을 그렸다. 2018년엔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이 지은 『여자의 일생』은 사라지고 색만 남았다. 그러다가 2019년 〈버무려진 막〉에 와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난다. 소설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할머니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무껍질을 입는 몸》(2020)은 생생하게 빛나는 할머니들을 인터뷰한 뒤에 지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그렇게 수많은 그물코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여러 빛깔의 강을 건너야 했으리라. 그래야만 서천꽃밭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예술가의 상상계는 참으로 끝이 없는 것일까. ‘첫 비롯’의 때를 씨줄로 휘어감아 돌린 전시의 낱낱은 끝없이 펼쳐진 ‘때새(時間)’의 물무늬․꽃무늬․별무늬로 활활거렸다. “그렇게 그녀는 수백만 개의 물방울로 흩어졌다.”고 낮게 읊조리듯이, 날줄로 쏟아지는 은하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씨줄이 내고 낳은 무지개가 ‘환빛(靈光)’으로 방울방울 피어올랐으므로. 제1장 《방울물 여인》은 어제를 이어 오늘로 오시는 ‘님’이요, 아제를 이어 오늘로 가시는 ‘님’이다. 그 ‘님’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는 비롯되었고, 다시 한데로 모여들었다. ‘오늘’이 가운데에 있다. 유사다큐영상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그러므로 ‘때빔(時空)’을 뛰넘는 자리로 우리를 불러 세운다.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의 ‘가운데(中)’ 세계라고 할까.

#2. 여섯 개의 그물코

《공무도하(公無渡河)》를 이루는 작품들의 온통은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가 큰 날줄이었다. ‘(하지)말라’고 외치는 ‘무(無)’에서 그는 그물이 된 씨줄을 짜낸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없’, 바꿔 말하면 활동하는 무(無)!”요, “짓고 일으키는 ‘없’, 바꿔 말하면 창조하는 무(無)!”이리라. ‘말라(無)’를 ‘님은 끝내 물을 건너셨네(公竟渡河).’의 ‘끝내(竟)’로 바꾼 것은 작가다. 이때 ‘끝내(혹은 마침내)’는 그가 펼쳐서 그린 그리운 긔림의 작업들이다. 그리워 그린 긔림들은 유사다큐영상으로(제1장), 드로잉으로(제2장), 입체영상설치&사운드로(제3장,제5장), 오브제회화로(제4장), 콜라주영화로(제6장) 드러났다. 2층에 펼친, 제1장 《방울물 여인》과 제2장 《지느러미 발》, 1층에 펼친 제3장 《백수광부의 눈》과 제4장 《율과 비늘》, 그리고 지하에 펼친 제5장 《긴힛ᄃᆞᆫ 그츠리잇가》와 제6장 《무너진 모퉁이의 노래》는 ‘없(無)’의 텅 빈 ‘비움(太虛)’이 마침내 이룬 여섯 개의 큰 그물코였으니까. 제3장 《백수광부의 눈》에서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처는 ‘건너지 말라’고 외치는데, 서인혜는 물(河)의 이쪽과 저쪽을 예술로 이어서 ‘건넜다’. 이 ‘건넘’은 이쪽과 저쪽을 잇는 시김새 미학의 다리다. 죽음을 되살리는 살림의 미학이랄까. ‘백수광부(白首狂夫)’를 우리말로 풀면, 흰(白) 사슴뿔(首) 관을 쓰고 접신(狂)에 든 사슴샤먼이다. 그는 어쩌면 사슴뿔 관을 쓰고 곰의 가죽옷을 입고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으리라. 아니 물속으로 들어가 물이 되었으리라. 노래는 물을 ‘죽음’의 상징으로 풀었으나, 서인혜는 물을 ‘솟구침’의 상징으로 풀었다. 스스로 백수광부가 되어 살아올라 ‘물의 노래’를 펼쳐낸 것이다. 여섯(六)은 물의 상징이다. 그중에서 육각수(六角水)는 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물로서 물의 어미다. 그것은 또한 쉬지 않고 이어 잇는 뜻이니 『천부경(天符經)』에서도 한 가운데에 자리 잡는다. 그물코 하나하나에 그가 이룬 ‘멋짓’의 ‘오늘살이’ 나날은 셀 수가 없다. 《백수광부의 눈》은 온통 푸른 물비늘로 가득했다. 그 속은 깊고 깊은 우물신화의 저편이었을 것이다. 세 다리로 서 있는 백수광부의 눈에서 ‘물밑(深淵)’을 꿰뚫어 솟구치려는 하늘 못의 산알 숨을 엿보았다.

#3. 거룩한 골짜기

서인혜는 수년 동안 홀로 ‘멋짓’을 짓고 일으키기 위해 홀로 나날 내고, 홀로 나날 낳고, 홀로 나날 돋는 ‘멋짓살이’ 살았다. ‘멋짓’은 그가 틔운 시김새 미학의 소용돌이 무늬다. 여럿이어도 한데로 솟아오르는 무늬들이다. 복희․여와는 한 꼴 소용돌이로 집집 우주를 내고 낳고 돋는다. 용오름이다. 용오름은 하늘땅을 울리는 날벼락 ‘빛오름’이다. 이렇게 둘이 하나로 솟구칠 때 ‘있(有)’이 ‘없(無)’으로 뒤바뀐다. 존재가 빛이 되는 것이다. ‘있없(有無)’이 하나로 돌아가면서 비로소 산알 알갱이들이 빛을 틔우는 것이다. 제1장 《방울물 여인》에서 크게 쏟아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예천군 용문사의 〈화장찰해도(華藏刹海圖)〉를 떠올리게 했다. 그야말로 흰 ‘빛방울’들의 화엄(華嚴)이었으므로. 작가는 이 방울들에서 방울방울 떠오르는 외할머니의 기억과 물의 신화와 솟구치는 생명성을 엿보았다. 마고(麻姑)가 홀로 궁희(穹姬)․소희(巢姬) 낳았듯이 그는 스스로 두루두루 몸내고 맘 낳고 얼 돋는 ‘물숨’을 피워낸 것이다. 불이 타오르는 ‘불숨(神明)’으로 ‘밝(明)’이요, 집집 우주에 빛나는 ‘ᄇᆞᆰ(星)’이요, 까마득한 ‘감ᄋᆞ(玄)’라면, 그는 물로 그 불을 휘감아 가마득하고 까마득하게 돌아가는 우주 소용돌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소용돌이의 ‘돌’은 문(門)의 오래된 옛말이다. 그는 그 소용돌이 문으로 들어가 거룩한 골짜기에 이르렀으리라. 제5장 《긴힛ᄃᆞᆫ 그츠리잇가》에 세운 생명바위들은 ‘골검(谷神)’의 다른 이름이다. “구스리 바회예 디신ᄃᆞᆯ/ 긴힛ᄃᆞᆫ 그츠리잇가(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라는 외침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즈믄 ᄒᆡᄅᆞᆯ 외오곰 녀신ᄃᆞᆯ/ 신잇ᄃᆞᆫ 그츠리잇가(천 년을 외로이 살아간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에서 뜻을 살필 수 있다. 헤어질 수 없으니 끈도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뜻을 말이다. 끊어지지 않는 소리, 이어이어 잇는 소리, 그래서 그는 생명바위들의 골짜기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시김새’를 펼쳐 놓았다. 아니, 어쩌면 이 시김새야 말로 ‘골검(谷神)’의 끊어지지 않는 노래이리라. 골짜기는 반드시 두 개의 봉우리에서 ‘Y’자 코드로 새겨질 때 거룩한 골검이 된다. 그 코드에 신성한 여신문명의 생명성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긴힛ᄃᆞᆫ 그츠리잇가》의 바위들은 불이 타올랐던 불숨의 자취도 만만찮다. 감고 감는 우주의 볼텍스 소용돌이가 뜨겁게 세운 ‘감ᄋᆞᆷ(玄)’의 자취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또한 우주엄마의 무늬가 아닐까, 생각된다. ‘ᄋᆞᆷ’은 엄마의 말뿌리이니까.

#4. 위대한 물 할머니

골짜기의 골(谷)은 옛말 ‘ᄀᆞᆯ’에서 왔으니 그것은 길(道)의 말뿌리이기도 하다. 단군왕검의 검(神)은 옛말 ‘ᄀᆞᆷ’에서 왔으니 곰(熊)의 말뿌리이기도 하다. 곰(熊)은 빛나는 웅녀(熊女)여신 곧 등걸(檀君)의 어머니다. 그러니 어쩌면 ‘환웅’은 곰샤먼의 이름일지 모른다. 그 곰샤먼이 ‘흰그늘’의 춤을 몸에 익혀 닦으니 ‘ᄒᆞᆫᄋᆞ’로 뒤바뀌어 등걸을 낳았다. 제 것만 아는 나나(私私)에 ‘나없(無我)’으로 휘돌아 솟구쳐 ‘ᄎᆞᆷ[참(眞)/춤(舞)]’ 하나를 이룬 것이 ‘ᄒᆞᆫᄋᆞ’이다. ‘ᄒᆞᆫᄋᆞ’는 크고 큰(ᄒᆞᆫ) 한 아름의 하나를 뜻한다. 스스로가 한 아름으로 솟구쳐 하나를 이룬 것이다. 홀로 솟구쳐야 한다. 솟구치는 춤을 추어야 한다. 그래야 춤이 참(眞)을 이룬다. 밝(明), 감ᄋᆞ(玄), 돌(門), 골검(谷神), 길(道), 곰(熊), 여신(熊女), 나없(無我), 춤(舞), ᄎᆞᆷ(眞), ᄒᆞᆫᄋᆞ(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솟구쳐 용오름 오르는 ‘숨빛’ 춤이다. 춤을 몸에 닦아 추어야 숨이 환하게 빛을 틔워 올린다. 서인혜가 펼쳐 놓은 여섯 그물코는 그렇게 시김새 ‘숨빛’의 춤이 씨줄을 타고 가는 놀라운 ‘멋짓’이었다. 그물코에 걸린 이야기 하나를 풀어보자. ‘ᄋᆞᆷ’에 ‘ᄀᆞᆷ’이다. 닿소리 옛이응 ‘ㆁ’은 ‘ㄱ’과 ‘ㅋ’으로 오르는 첫소리다. 옛이응 위에 싹이 난 ‘ㆁ’에서 ‘ㄱ’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ᄋᆞᆷ’에 ‘ᄀᆞᆷ’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ᄀᆞᆷ’은 ‘검’, ‘곰’, ‘감’으로 갈래를 틔운다. 모두 신(神)의 뜻을 가진다. 자, 이제는 곰(熊)에 검(神)이다. 그러니 ‘검’은 누구일까? 그이가 바로 웅녀여신이다. 웅녀여신의 먼 어머니가 마고할미이고. 앞에서 살폈듯이 곰의 말뿌리는 ‘ᄀᆞᆷ’이다. ‘ᄀᆞᆷ’의 말뿌리는 ‘ᄋᆞᆷ’이다. ‘ᄋᆞᆷ’에 ‘ᄀᆞᆷ’이요, ‘ᄀᆞᆷ’이 곰이라는 이야기는 틀린 말이 아니다. ‘ᄋᆞᆷ>ᄀᆞᆷ’이니, 풀어서 ‘엄마곰여신’이다. ‘ᄋᆞᆷ’이라는 말뿌리에서 ‘엄마’라는 말이 자랐고, ‘엄마ᄀᆞᆷ’이라는 말뿌리에서 ‘고마’, ‘고모’, ‘마고’라는 큰 엄마(한머니>할머니>할매>할미) 이름이 자랐고, ‘ᄀᆞᆷ’이라는 말뿌리에서 ‘검’이라는 말이 자랐다. 〈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보물343호) 가운데 ‘산수짐승얼굴무늬’로 알려진 벽돌이 있다. 도깨비, 귀신이라고 알려진 이것이 웅녀여신이다. 꼴을 보면, 위대한 사슴샤먼으로부터 왔기에 사슴뿔을 가졌고, 위대한 엄마이기에 큰 가슴을 가졌고, 위대한 곰이기에 날카로운 손톱․발톱을 가졌고, 위대한 ‘검(神)’이기에 활활거리는 불을 내뿜고, 위대한 ‘참나(眞我)’이기에 연꽃 가운데 있고, 위대한 ‘물임금(水王)’이기에 물 가운데 서있다. 웅녀는 여신이요, ‘물임금’이다. 서인혜가 짠 그물은 이렇게 드넓다. 그물코에서 ‘숨빛’이 오르내린다. 제6장 《무너진 모퉁이의 노래》에 등장하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조용필의 노래)과 〈킬리만자로의 눈〉(헤밍웨이의 소설과 영화)에서 내가 본 것은 표범과 하이에나가 아니라 ‘산’과 ‘곰’이었다. 그것들의 아른거리는 무늬들이었다. 이 또한 상징의 여러 결일 것이다.

#5. 할머니의 꽃내(), 그리고 지느러미

2021년 《구멍 난 자리에서 춤을 추는》에 부서진 하늘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부서진 꽃들의 마른 ‘꽃내(香)’에서 할미 내음이 풍겼다. 몸을 빼야 일이 이뤄지니 그 꽃들의 이름은 ‘몸빼’였으나, 몸이 빠져 나간 자리에서 꽃들은 무참하기도 하고, 그냥 그것으로서 아주 오래된 문명의 흔적 같기도 했다. 할미는 할매, 할머니라 하여 ‘늘그이’로 사는 늙은이 ‘큰엄마’를 이른다. ‘할’은 ‘한’으로 ‘크다’는 뜻이요, ‘미’, ‘매’, ‘머니’는 ‘엄마’, ‘어머니’를 줄여 말하는 것이다. 말머리 ‘큰’에 말꼬리 ‘엄마’가 붙어서 할머니 곧 할미가 된 것이다. 서인혜는 ‘할미>할머니’에서 실을 뽑는다. 그이는 엄마의 엄마이기도 하고, 지금 여기의 ‘때새(時間)’를 끊고 넘어서야 알아차릴 수 있는 마고할미의 실이기도 하다. 모든 할미들의 할미는 마고(麻姑)에 가 닿는다. 그러나 그곳은 ‘이곳(이승)’에서 넘어갈 수 없는 ‘저곳(저승)’이다. 처음엔 하늘 부서진 구멍에서 부스러기로 쏟아지는 마른 꽃으로 보았기에《구멍 난 자리에서 춤을 추는》으로 풀었으나, 이제는 ‘징이여 돌이여’로 부르는 〈딩아 돌하〉로 푼다. 고려가요 「정석가(鄭石歌)」의 첫 글씨다. 뒤에 이런 글이 따라 붙는다. “옥으로 연꽃을 새기옵니다. 바위 위에 접을 붙이옵니다. 그 꽃이 세 묶음 피어야만 유덕하신 임을 이별하고 싶습니다.” 제4장 《율과 비늘》은 그 바위 꽃들의 조각들이었다. 그런데 그 조각들의 비롯은 여와(女媧)가 하늘구멍을 메꾸려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불에 녹인 돌, 그 돌로 메꾸려는 하늘구멍, 세상을 떠받치는 거북이, 물이 흥건한 대지, 불탄 재로 빨아들인 물, 꽃잎이 흩날리는 평화, 밤하늘의 수많은 별…. 씨줄은 감고 감는 ‘감ᄋᆞᆷ(玄)’이니, 이야기는 씨줄을 타고 어디든 건너다닌다. 여와 이야기는 「정석가」의 연꽃이 되고 바위 꽃이 되었다. 또 그 이야기는 서인혜가 만난 할머니들의 ‘몸빼’ 꽃이 되었다. 그러니 할머니들의 할미꽃은 삶의 물비늘이기도 할 것이리라. 그는 이 물비늘에서 ‘지느러미 발’을 떠올린 게 아닐까.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느러미가 필요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건너간 곳은 아마도 서천꽃밭이었으리라.

#6. 서천꽃밭에서

서천꽃밭은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꽃밭이다. 제주도의 문전본풀이에서는 일곱 형제들이 어머니 여산부인을 살리기 위해 서천꽃밭에 간다. 그곳에서 형제들은 살오를꽃, 피오를꽃, 웃음웃을꽃 등의 환생꽃을 따 어머니를 되살린다. 서인혜의 꽃무늬 돌들은 서천꽃밭의 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환생꽃은 제3장 《백수광부의 눈》에서 반짝이는 물빛이었고, 서천꽃밭을 건너가는 제2장 《지느러미 발》이기도 했다. 제1장 《방울물 여인》에는 그가 외할머니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명멸한다. 나는 그 명멸하는 빛들 속에서 그가 기어이 서천꽃밭으로 건너가려는 ‘물오름’의 힘찬 날갯짓을 보았다. 그러나 그 날개는 새의 날개가 아니라, 물고기의 지느러미였다. 찬연히 빛나는 물비늘이었다. 그가 서천꽃밭에 가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꽃들의 이름에서 살필 수 있듯이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이요, 다시 살아 오르려는 부활이리라. 이 꽃밭에서 삶이 다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는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를 외치며, 그 보다 먼저 물을 건너 환생꽃을 가지려고 했던 것이리라. 이 이야기는 이제야 한 매듭을 지었다. 두 번째 매듭을 위한 시김새는 계속될 것이다.